고린도 전서 14:1-40
연구 노트
예언: 고전 12:10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예언” 참조.
방언으로 말하는: 고전 12:10 연구 노트 참조.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리스어 파라클레시스(“격려하다”)와 파라미티아(“위로하다”)에는 둘 다 “격려”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파라미티아가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 파라미테오마이가 요 11:19, 31에서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나사로가 죽은 뒤에 유대인들이 그의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했다고 알려 준다.—또한 이 동사가 “위로의 말을 하다”로 번역된 살전 5:14 참조.
통역을 하여: 또는 “해석을 하여”.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여기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행 9:36; 고전 12:30; 14:13, 27) 하지만 이 단어에는 “의미를 밝혀 주다; 온전히 설명하다”라는 뜻도 있다.—눅 24:27; 고전 12:10 연구 노트 참조.
계시: 롬 16:25 연구 노트 참조.
생명 없는 것들: 여기서 이 표현은 악기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나팔: 모세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중요한 일을 알릴 때 나팔을 불었다. (민 10:2-10) 예를 들어 전쟁에 나갈 때에는 나팔로 전쟁 신호를 울렸다. (민 10:9) 만약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다면 군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회중에서도 어떤 지시 사항이 모호하거나 의사소통이 분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 사이에 혼란과 무질서가 생기고 의욕이 꺾일 수 있다.
통역: 또는 “해석”.—고전 14:5 연구 노트 참조.
당신이 드리는 감사에 “아멘” 하고 말하겠습니까?: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것으로 “그렇게 되소서” 또는 “확실히”를 의미한다. 여러 성경 구절을 보면 공개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기도가 끝날 때 아멘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 16:36; 느 5:13; 8:6) 바울의 말을 볼 때, 그리스도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러한 관행에 따라 기도가 끝날 때 함께 아멘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아멘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했는지 아니면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용어 설명 “아멘” 및 롬 1:25 연구 노트 참조.
사람들을 가르치기: 또는 “사람들을 말로 가르치기”. 그리스어 동사 카테케오는 문자적으로 “소리가 아래로 울려 퍼지게 하다”를 의미하며, 말로 가르친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행 18:25 연구 노트 참조.
내 정신으로: 또는 “내가 이해한 것으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스는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바울은 영감을 받아, 방언을 하는 것이 덜 중요한 선물이라고 밝히면서, 이해할 수 없는 방언 즉 언어로 1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다섯 마디 말을 하겠다고 이야기한다.—고전 14:11, 13-18.
어린아이가 되지: 바울은 먼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다시 말해 어린아이같이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나타내지 말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는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다시 말해 어린아이처럼 경험이 없고 순진한 사람이 되라고 권한다.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이어지는 내용은 사 28:11, 12에서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율법”이라는 표현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 10:34; 롬 2:12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 바울은 사 28:11, 12을 인용하여, 하느님께서 “외국인들의 혀”로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이지만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이사야의 예언에는 “그분은 ··· 말씀하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바울은 “내가 ··· 말하겠다”라는 형식으로 인용한다.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칠십인역」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번역하는 데 매우 많이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을 덧붙인다. 그러한 표현이 나오는 예를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 1:11; 22:25; 28:16; 30:1; 31:9; 33:10; 43:10; 48:17; 49:18(롬 14:11에서 인용됨); 52:4, 5; 암 1:5; 미 2:3; 나 1:12; 말 1:2. 부록 다에서 설명하듯이, 히브리어 성경과의 이러한 연관성은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라는 칭호로 대치되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부록 다3 소개; 고전 14:21 참조.
예언: 고전 12:10 연구 노트 참조.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보통 사람이 들어온다면: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행 8:13; 16:31-34; 18:8) “믿지 않는 사람”도 그리스도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다. (고전 14:22) 그리스도인 모임에 참석한 “믿지 않는 사람”(그리스어 아피스토스)과 “보통 사람”(그리스어 이디오테스)은 분명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면에서 발전한 정도가 서로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를 들음으로 유익을 얻었는데, 진리를 통해 책망을 받고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었다.”—고전 14:23-25; 고후 6:14.
시: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프살모스는 신성한 노래나 시를 가리키며 “찬양의 노래”로 번역할 수도 있다.
통역을 해야: 또는 “해석을 해야”.—고전 14:5 연구 노트 참조.
통역자: 또는 “해석하는 사람”.—고전 14:5 연구 노트 참조.
무질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여기서 바울은 무질서와 평화를 대조한다. 그는 여호와를 빌 4:9; 살전 5:23; 히 13:20에서 “평화의 하느님”으로, 롬 15:33; 16:20에서는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으로 언급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질서와 연합의 기초가 된다. 바울은 질서 있게 일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질서 있는 방식으로 숭배를 드림으로 “서로 세워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모임을 즐기게 되고, 그 결과 “모두가 격려를 받게” 될 것이었다. (고전 14:26-32) 숭배를 위한 모임을 질서 있게 진행하는 것은 평화의 하느님의 특성과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분께 영예가 돌아갈 것이었다.
여자들은 회중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앞 구절들에서 바울은 방언을 하는 사람이 통역자가 없으면 “잠자코 있어야” 하고, 예언을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계시를 받으면 “잠자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회중 집회에서 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말하는 여자들에게 지시한다. (고전 14:28, 30, 34) 일부 여자들은 남자들이 가르치는 일을 할 때 중간에 끼어들거나 그들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 같다. 바울은 그런 여자들에게 질문이나 알고 싶은 점이 있으면 집회를 방해하기보다는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고전 14:35) 또한 바울이 영감을 받아 이 구절에서 한 말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감독하는 역할을 남자들에게 맡기신다는 성경의 지침과 일치한다. (딤전 2:12) 하지만 사도 바울이 여자들이 동료 봉사자나 좋은 소식의 전파자로서 수행하는 역할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롬 16:1, 2; 빌 4:2, 3) 바울이 영감을 받아 한 지시는 여자들이 회중 집회 때 참여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었다.—고전 11:5; 히 10:23-25.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나왔습니까?: 바울이 한 이 수사적인 질문은 고린도 회중 사람들에게 그들의 회중이 최초의 회중이 아니며 그들에게만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진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합체의 일부였다. 그들은 회중 내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질서와 연합이 증진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었다.
영의 선물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청하고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눅 11:13) 또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다. (고후 1:21, 22) 하지만 이 구절에 언급된 “영의 선물”은 성령에 의한, 특별한 기적의 선물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그리스어 프뉴마티코스를 번역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영에 속한; 영적인”이라는 의미이다. 고전 14:1에서는 “영적인 선물들”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기적의 선물들에 관해 논하는 내용의 거의 끝부분인 이 구절 즉 고전 14:37에서 예언하는 일과 “영의 선물”을 함께 언급한다. 이 점을 볼 때 그가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령에 의한 기적의 선물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련에 따라: 또는 “질서 있게”. 직역하면 “질서에 따라”. 문맥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숭배를 위한 모임을 질서 있게 진행하라고 권하고 있다. (고전 14:26-33)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가 성전 봉사의 절차를 언급하는 눅 1:8에서는 “차례”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칠십인역」의 민 1:52에서 잘 조직된 이스라엘의 진영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