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후서 2:1-26

2  그러므로 내 아들이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과분한 친절로 계속 능력을 얻으십시오. 2  그리고 그대가 나에게서 들었고 많은 증인이 확증한 것들을+ 충실한 사람들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인으로서+ 고난에 참여하십시오.+ 4  군인으로 복무하는 사람은 자기를 군인으로 모집한 사람의 승인을 얻기 위해 생계를 위한 영리 활동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5  또한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6  열심히 일하는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7  내가 하는 말을 계속 생각하십시오. 주께서 모든 일에 그대에게 이해력을 주실 것입니다. 8  내가 전파하는 좋은 소식과 일치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고+ 다윗의 자손이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9  그 좋은 소식을 위해 나는 고난을 겪고 있으며 죄인처럼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이 때문에 나는 선택된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계속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영광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믿을 만합니다. 곧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는다면, 또한 확실히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12  우리가 계속 인내한다면, 또한 왕으로서 그분과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인한다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13  우리가 불충실해도 그분은 계속 충실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  그들에게 이것을 계속 생각나게 하고, 말 때문에 싸우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그들에게 지시하십시오. 그런 일은 아무 쓸모가 없고 듣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뿐입니다. 15  그대 자신을 승인받은 사람으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다루며+ 아무것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16  거룩한 것에 어긋나는 헛된 말을 배척하십시오.+ 그것은* 사람을 더욱더 불경건에 빠지게 만들고, 17  그들의 말은 괴저처럼 퍼질 것입니다. 그들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습니다.+ 18  그들은 진리에서 벗어나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일부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19  그렇지만 하느님의 견고한 기초는 그대로 서 있으며, 거기에는 “여호와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신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불의를 버려야 한다”라는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20  큰 집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뿐만 아니라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지 않습니다.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떠나 있으면,+ 귀하게 쓰이는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주인에게 유용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22  젊음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23  또한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을 배척하십시오.+ 알다시피 그런 논쟁은 싸움을 일으킵니다. 24  주의 종은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고,+ 가르칠 자격을 갖추고, 해를 당할 때에도 참고,+ 25  그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온화하게 교훈해야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26  그리고 그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뜻을 행하고 있음을+ 알고 정신을 차려 그의 올무에서 벗어날지도 모릅니다.

각주

또는 “그들은”.

연구 노트

내 아들이여: 바울은 이 말을 사용해 애정을 표현한다.—딤후 1: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과분한 친절로: 바울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디모데에게 “능력을 얻는” 것이 “과분한 친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용어 설명 “과분한 친절” 참조) 여호와께서는 예수에게 특별한 친절 즉 은혜를 관대하게 베푸셨으며, 따라서 예수는 ‘하느님의 은혜로 충만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요 1:14연구 노트) 또한 예수께서는 그러한 친절에 대해 인식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그 친절을 베푸는 수단이 되셨다. 따라서 영감받은 성경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도 언급한다.—살전 5:28; 살후 3:18.

계속 능력을 얻으십시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한한 능력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느님께 의지하라고 권한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엔디나모오는 명사 디나미스(능력; 힘)와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디나미스딤후 1:8에서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되었다.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동사의 형태는 “디모데가 하느님께 계속 의지해야 한다는 즉 ‘계속 힘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바울은 엡 6:10에서도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여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여호와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력한 힘 안에서 계속 능력을 얻으라”고 권했다.

확증한 것들을 충실한 사람들에게 맡기십시오: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이 배운 귀중한 진리를 다른 책임 맡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를 즉 맡기기를 바란다. “맡기다”로 번역된 단어의 의미를 볼 때 디모데는 그 일을 주의를 기울여 해야 했다. (딤전 6:20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의 이 말은 모든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과 조화를 이룬다. (마 28:19, 20)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울을 가르치셨고 바울은 디모데를 가르쳤다. 그리고 디모데는 그 가르침을 충실한 사람들에게 맡겼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가르칠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적합한 자격을 갖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다” 또는 어떤 일을 하기에 “충분하다”를 의미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쓴 편지에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맡겨진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그들을 유능하게 해 주신다는 점을 설명한다.—고후 3:5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인: 딤후 2:3-6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움과 고난을 인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예를 든다. 3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군인에 비하는데, 그는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 여러 번 그 비유를 사용했다. (고전 9:7; 고후 10:3-5; 엡 6:10-17; 빌 2:25; 살전 5:8; 딤전 1:18; 몬 2)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며 어려움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며 기꺼이 고난을 감수한다. 그러한 고난에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심지어 박해를 받는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인”으로서 굳은 의지, 인내, 자기 징계와 같은 특성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다.

생계를 위한 영리 활동에 얽매이지: 복무 중인 훌륭한 군인은 민간인들이 하는 활동이나 돈을 버는 활동에 “얽매이지”(또는 “참여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한 영리 활동”(달리 번역하면 “일상사”)을 하다 보면 주의가 산만해져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정신과 활력을 쏟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군인이 하는 일에 그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으므로, 그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한다. 그와 비슷하게 디모데도 다른 일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봉사의 직무에 계속 전념해야 했다.—마 6:24; 요1 2:15-17.

경기에: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운동 경기에 비한다. 선수들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했다. 경기 장소에는 경기 규칙을 새긴 비문이 세워져 있었다. 뇌물이 금지되어 있었고 심판이 규칙을 엄격하게 시행했다. 훈련 중이나 경기 중에 하나 이상의 규칙을 어기면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승인을 받으려면 삶에 대한 그분의 표준과 요구 조건을 따라야 한다. 디모데는 “고난”에 참여해야 했으며 고통을 줄이려고 하느님의 요구 조건 중 어느 것도 어겨서는 안 되었다.—딤후 2:3. 고전 9:24, 25; 딤전 4:7, 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미디어 갤러리 “썩어 없어질 면류관” 참조.

열심히 일하는 농부: 여기서 “열심히 일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수고하다; 애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기진맥진할 정도로 일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를 바란다면 지칠 줄 모르고 일해야 했으며, 때로는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디모데도 하느님의 승인을 얻기 원한다면 몸을 사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고전 3:6, 7; 골 1:28, 29. 딤전 4:10 연구 노트 비교.

내가 하는 말을 계속 생각하십시오: “계속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분별력을 사용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마 24:15; 막 13:14) 앞서 바울은 세 가지 예를 들었다. (딤후 2:3-6) 이제 그는 디모데에게 그 예들에 담긴 교훈을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딤전 4:15 연구 노트 비교) 바울은 디모데에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필요한 이해력 또는 분별력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시킨다. 바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비슷한 조언이 나오는 잠 2:6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다.

다윗의 자손: 또는 “다윗의 후손”. 직역하면 “다윗의 씨”.—부록 가2 참조.

하느님의 말씀은 갇혀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구절의 앞부분에서 자신이 “죄인”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예수 곁에서 처형된 죄수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단어와 동일하다. (눅 23:32, 33, 39) 하지만 이제 바울은 대조가 되는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은 갇혀 있지만 어떤 감옥이나 쇠사슬도 하느님의 말씀을 가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딤후 1:8, 16)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바울은 좋은 소식의 반대자들이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소식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계속 인내한다면: 이 표현은 예수의 이러한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마 24:13 연구 노트 참조) 바울과 그의 가까운 동료 디모데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영광스러운 희망이 있었다. (눅 22:28-30) 여기서 바울은 그 희망이 이루어지려면 인내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희망이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빌 3:14 연구 노트 참조) 그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가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3:18)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죽기까지 충실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딤후 4:6-8.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기: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본성과 특성과 표준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행동하실 수 없다. (출 34:6, 7; 말 3:6; 딛 1:2; 약 1:17) 또한 자신의 목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실 수도 없다. 따라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여호와께서는 항상 자신의 말씀을 이루신다.—롬 3:3, 4연구 노트.

말 때문에 싸우지 말라고: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에 대해 싸우지 말라고 권고한다. 일부 거짓 선생들이 그러한 일을 부추겼던 것 같다. “말 때문에 싸우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말”을 의미하는 명사와 “싸우다”를 의미하는 동사가 합쳐진 것이다. 이 표현은 바울의 편지들보다 이전에 기록된 고대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를 사용했는데, 그 단어를 직역하면 “말싸움”이 된다. (딤전 6:4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싸움은 말의 의미에 대한 사소한 의견 차이 때문에 벌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해롭고 매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다.

하느님: 일부 권위 있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하느님”으로 되어 있고, 몇몇 사본들에는 “주”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몇몇 번역판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부록 다1 참조.

지시하십시오: 또는 “엄숙히 명령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를 더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면 “철저히 증거하십시오”가 된다. (행 20:24; 28:23) 이 단어에 대해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이 단어는 중요한 문제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대해 ‘증언하다, 경고하다’를 의미한다.”

듣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카타스트로페(“파멸”이라는 의미)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듣는 사람들을 파멸시킬”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말 때문에 싸우는 것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그는 디모데에게 “하느님 앞에서”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무의미한 다툼에 참여하지 말라고 지시하라고 말한다.—딤전 5:21 연구 노트 참조.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다루며: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똑바로 자르다”를 의미한다. 바울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 표현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천을 똑바로 정확하게 자르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표현을 썼을 수 있다. 또는 「칠십인역」의 잠 3:6; 11:5에 나오는 이 단어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다. 「칠십인역」의 그 구절들에서 이 동사는 사람이 가는 비유적인 길을 곧게 만드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농부가 고랑을 똑바로 내는 것과 같은 동작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바울이 무엇을 염두에 두었든, 그가 디모데에게 한 말의 취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올바른 길에 고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디모데는 그 말씀을 올바로 다루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했으며, 개인적인 견해나 말이나 그 밖의 사소한 문제에 대한 논쟁에 빠짐으로 그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었다.—딤후 2:14, 16.

최선을 다하십시오: 한 사전에서는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스푸다조)를 “열심을 보이다, 애쓰다,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성실하게 일하다”로 정의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라고 권고한 것이다. 디모데가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승인을 받고 훌륭한 일꾼이 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디모데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거나 그를 반대한다 해도 그는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헛된 말: 딤전 6:20 연구 노트 참조.

불경건: 롬 1:18 연구 노트 참조.

괴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강그라이나는 의학 용어로, 신체 조직의 일부가 혈액 순환 장애로 죽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병은 흔히 빠른 속도로 퍼지며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바울은 배교적인 가르침과 “거룩한 것에 어긋나는 헛된 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한다. (딤후 2:16-18) 그는 영적으로 불건전한 그러한 가르침을, 하느님의 말씀에 나오는 진리에 근거한 “건전한” 가르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주 언급한다. (딤전 1:10; 6:3; 딤후 1:13; 딛 1:9; 2:1. 또한 딤전 6: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괴저처럼 퍼지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헛된 말과 거짓 가르침이 회중 내에서 신속히 퍼질 수 있으며 영적인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전 12:12-27.

그들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교적인 가르침을 배척하라고 말하면서 배교자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을 언급한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진리에서 벗어났으며,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주장하면서 거짓을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 (딤후 2:18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디모데 전서를 쓸 당시, 후메내오는 이미 믿음을 배척한 상태였다. 그는 제명되어 회중에서 추방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통해 가르침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딤전 1:20 연구 노트 참조) 그 후로 1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는 변화하지 않았다.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에베소의 일부 거짓 선생들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비유적인 의미로 부활되었다고 가르친 것 같다. 몇몇 거짓 선생들은 심지어 바울의 말을 왜곡해서 자신들의 잘못된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했을 수 있다. 바울은 죄인이 침례를 받을 때 이전의 생활 방식에 대해 죽고 비유적인 의미로 살아나게 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적인 부활은 성경에서 알려 주는 문자적인 부활의 희망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미래에 있을 문자적인 부활의 희망을 부인하는 것이었으며 배교자들이었다.—롬 6:2-4, 11; 엡 5:14. 엡 2:1 연구 노트 참조.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에 바울은 이미 부활의 희망을 약화시키는 거짓 가르침에 맞서 싸웠다. (고전 15:2연구 노트, 12. 행 17:32 비교) 미래에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완전한 생명으로 부활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한 사람들은 영감받은 성경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단 12:13; 눅 23:43; 고전 15:16-20, 42-44) 그리스도인이 부활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인해 믿음이 무너진다면, 그 약속된 미래의 상을 받을 희망을 잃게 될 것이었다.—요 5:28, 29.

하느님의 견고한 기초: 바울은 이 “견고한 기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다른 편지들에서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기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는 예수께서 여호와의 목적 안에서 하시는 역할을 기초에 비한다. (고전 3:11) 엡 2:20에서 그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를 언급한다. 또한 그리스도인 회중을 묘사할 때에도 비슷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딤전 3:15 연구 노트 참조. 또한 히 6:1 참조) 앞선 두 구절(딤후 2:17, 18)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교적인 가르침을 배척하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여호와의 방식과 활동과 특성이 항상 신뢰할 만하고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신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견고한 기초는 그대로 서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시 33:11; 말 3:6; 약 1:17.

여호와: 여기서 바울은 민 16:5의 「칠십인역」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칠십인역」의 그 구절에서 모세는 고라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의 것인 사람들을 아신다”고 말했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오며 따라서 「신세계역」에서는 이 구절 즉 딤후 2:19의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부록 다1다2 참조.

“여호와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신다”: 바울이 민 16:5을 인용한 것을 볼 때,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반역하는 자들을 아신다는 점을 디모데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에 관한 기록을 언급한 것 같다. 그분은 반역자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 조처를 취하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오래전에 고라와 그의 지지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신 것처럼, 1세기 배교자들로 인해 자신의 목적이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하지만 모세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들을 아신다. 그분은 그들을 매우 잘 아시며 그들을 승인하신다는 것을 표현하신다.—갈 4:9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이 부분은 사 26:13의 「칠십인역」 표현을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일 수 있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부록 다3 소개; 딤후 2:19ㄴ 참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불의를 버려야 한다”: 바울이 사용한 표현을 볼 때 이 문구가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바울이 한 이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바울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문구는 고라의 반역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민수기 16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문구도 동일한 기록과 관련이 있고 민 16:26에 나오는 모세의 말에 담긴 사상을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세 시대에 여호와께 충성스러웠던 사람들은 단호한 행동을 취하여 불의한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디모데와 그 밖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에게 온갖 불의한 것을 버려야 한다고, 즉 온갖 불의한 것에서 떠나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한 불의한 것에는 바울이 이 구절의 문맥에서 언급한 “말 때문에 싸우는” 일, “헛된 말”, 배교적인 가르침,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이 포함된다.—딤후 2:14, 16, 18, 23.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인장은 소유권을 표시하거나 어떤 것이 사실임을 확증하려는 목적으로 찍은 인장이나 새긴 문구를 가리킬 수 있다. (용어 설명 “인장” 참조) 고대에는 건물의 기초나 다른 부분에 건축자나 소유주나 건물의 목적을 표시하는 문구를 새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 (고후 1:22; 엡 1:13 연구 노트 비교) 요한 계시록에서는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초석들을 언급한다. (계 21:14) 앞의 연구 노트들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인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구가 들어 있다.

큰 집에는 … 그릇뿐만 아니라 … 그릇도 있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큰 집”에 비하고 회중의 개개인을 “그릇” 또는 “기구”에 비한다. “그릇” 또는 “기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성경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행 9:15; 각주; 롬 9:22연구 노트; 살전 4:4연구 노트; 벧전 3:7) 이어지는 구절들(딤후 2:21-26)에서 바울은 이 비유를 사용하여 디모데에게 회중에서 여호와의 원칙을 고집스럽게 무시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릇: 또는 “도구; 기구”.—딤후 2:20 연구 노트 참조.

젊음의 욕망: 디모데는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이미 성인이었으며 아마도 30대였을 것이다. (딤전 4:12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젊음의 욕망을 피하라”고, 즉 젊은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욕망과 싸우기 위해 자기 징계를 하라고 권한다. (전 11:9, 10) 그러한 욕망에는 부도덕한 성적 욕구도 포함된다. (잠 7:7-23. 고전 6:18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욕망은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 경쟁심, 쾌락을 즐기고 싶은 욕구와 같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잠 21:17; 눅 12:15; 갈 5:26; 딤전 6:10; 딤후 3:4; 히 13:5.

피하고 … 추구하십시오: 딤전 6:11 연구 노트 참조.

주: 문맥을 볼 때 여기서 “주”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 같다. (딤후 2:19)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7, 8, 17, 22로 표기됨)에서는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주를 부르는 사람들: 바울은 디모데에게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라고 권하면서 그들을 “주를 부르는 사람들”로 언급한다. (롬 10:13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어울리기에 좋은 사람들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덕적, 영적으로 깨끗하고 동기가 순수하고 여호와께 온전히 정성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딤전 1:5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은 디모데가 젊음의 욕망을 피하고 좋은 특성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의…를 추구하십시오: 딤전 6:11 연구 노트 참조.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을 배척하십시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세 번째로 디모데에게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추측에 근거해 있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해 싸우는 일을 그만두도록 도우라고 권한다. (딤후 2:14연구 노트, 16)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도 그와 비슷한 점을 언급했다.—딤전 1:4; 6:20 연구 노트 참조.

무지한: 바울은 에베소 회중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논쟁을 묘사하는 데 “무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을 좀 더 직역에 가깝게 옮기면 “교육받지 못한”이 된다.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러한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아이들조차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모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분명 그들은 사랑을 나타내라는 그리스도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적용하지 않고 있었다.—요 13:34, 35.

주의 종: 문맥을 볼 때 여기서 “주”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킨다. (딤후 2:19) 히브리어 성경에서 여호와의 숭배자는 여호와의 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수 1:1; 24:29; 삿 2:8; 왕하 10:10; 18:12) 바울은 디모데를 비롯한 감독자들에게 회중에서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감독자들이 하느님의 교훈을 따라야 하며 그들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하느님께 답변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특성들은 딤전 3:1-7과 딛 1:5-9에 언급된 것들과 함께 감독자들이 갖춰야 하는 특성들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의 종”이므로 모두가 그러한 특성들을 나타내야 한다.

종: 일반적으로 “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남의 소유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딛 1:1; 약 1:1. 롬 1:1 연구 노트 참조) 한 참고 문헌은 딤후 2:24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종이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하느님의 종이 되는 것은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살전 1:9 연구 노트 참조.

싸우지: “싸우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일반적으로 무기를 들고 또는 맨손으로 싸우는 것을 가리키지만 (행 7:26) 일부 문맥에서는 말로 싸우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요 6:52; 약 4:1, 2) 여기서 바울은 “주의 종”이 말다툼이나 어리석은 논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준다. (딤후 2:14, 16, 23) 주 예수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방식을 본받을 때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마 11:29; 12:19.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의 다투기 좋아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거짓 선생들과는 달리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즉 친절하게 대하라고 권한다. (딤후 2:23) 이 그리스어 표현은 “모든 사람을 재치 있게 대하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 자신도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대한 열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부드러움이나 재치나 친절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모욕하고 거칠게 대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부드럽게 대하셨다. (행 8:3; 9:1-6; 갈 1:13, 14; 딤전 1:13) 바울은 부드러움이 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배웠다. 그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고전 15:34) 그는 가혹한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려고 했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 재치와 사랑을 나타냈다. (살전 2:8) 바울은 “젖 먹이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대하듯 부드러운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다. (살전 2:7 연구 노트 참조) 그는 디모데가 자신을 본받아, 회중 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인과 회중 밖의 반대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기를 바랐다. 디모데는 싸움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회중이 연합되고 사랑 넘친 곳이 되게 해야 했다.—딤후 2:23, 25.

가르칠 자격을 갖추고: 바울은 이전에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 조건들을 알려 줄 때도 “가르칠 자격을 갖추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딤전 3:2 연구 노트 참조) 디모데는 가르치는 부면만이 아니라 회중에서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부면에서도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즉 능숙해야 했다. 하지만 바울이 사용한 “주의 종”이라는 표현은 장로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참그리스도인들은 능숙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히 5:12 비교.

해를 당할 때에도 참고: 이 표현은 화를 내지 않고 “악을 참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복합어를 번역한 것이다. “주의 종”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인내해야 한다. (롬 12:17) 디모데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부당하게 대할 때 이 특성을 나타내야 했다. 바울은 이 편지의 뒷부분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딤후 3:12) 따라서 “해를 당할 때에도 참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특성이다.—마 5:39 연구 노트 참조.

그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는 이 문맥에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거나 그 가르침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특히 에베소 회중 내에서 성경의 교훈이나 인도하는 형제들의 권고를 따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 수 있다.

온화하게 교훈해야: 이 문맥에서 “교훈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바로잡다; 지침을 베풀다”라는 뜻을 담고 있을 수 있다.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종”은 그러한 교훈을 “온화하게” 즉 겸손하고 온유한 태도로 베풀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사람을 부드럽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딤후 2:24연구 노트. 또한 갈 5:23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그리스도인 장로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온화하게 시정하거나 교훈하면 그들이 회개하는 즉 “생각을 바꾸는”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용어 설명 “회개” 참조) 그러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가져오시는 것이다. 그분은 고집 센 태도를 나타내던 그리스도인이 그처럼 중요한 변화를 하도록 도와주신다. 바울은 이어서 그러한 회개가 가져오는 좋은 결과 몇 가지를 언급한다. 회개한 죄인은 진리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고 정신을 차려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된다.—딤후 2:26.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지도: 바울의 말을 볼 때 회중의 일부 사람들이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아 진리에서 벗어남으로 그의 올무에 걸려들었던 것 같다. (딤후 2:18, 23, 25)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표현에는 마귀가 거짓말을 사용해 그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사로잡았다는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사탄은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도록 그들을 조종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처럼 올무에 걸려든 사람들을 “온화하게” 교훈하여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직역하면 “[취한 상태에서] 깨어나게”. 고전 15:34 연구 노트 참조) 하라고 권고했다. 그들이 회개하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디어

바울이 수감된 상태에서도 확고함을 유지하다
바울이 수감된 상태에서도 확고함을 유지하다

바울은 로마에 두 번째로 수감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딤후 4:6) 게다가 데마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은 그를 버렸다. (딤후 1:15; 4:10) 하지만 바울에게는 행복하다고 느낄 만한 이유가 있었다. 몇몇 용기 있는 형제들이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를 지원해 주었다. (딤후 4:21) 예를 들어,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 로마 곳곳을 찾아다녔다. (딤후 1:16, 17) 바울은 수감된 상태에서도 확고함을 유지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하늘 왕국”에 그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딤후 4:8, 18) 바울은 이 힘든 시기에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는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영감받은 편지를 써서, 그가 계속 충실을 유지하도록 격려했다.—딤후 1:7, 8; 2:3.

큰 집에 있는 그릇들
큰 집에 있는 그릇들

부유한 로마 사람의 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나 기구가 있었다. 부엌에서 종들은 청동이나 진흙으로 만든 냄비나 팬을 사용했다. 포도주나 올리브기름 같은 액체를 저장하는 데는 더 큰 토기 주전자나 암포라를 사용했다. 식사를 할 때는 색유리나 청동이나 은이나 진흙으로 만든 그릇들이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쓰레기통이나 요강과 같이 덜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들도 있었다. 성경에서는 그릇이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행 9:15)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큰 집”에 비하고 회중의 개개인을 “그릇” 또는 “기구”에 비한다. “귀하게 쓰이는” 그릇을 “귀하게 쓰이지 않는” 그릇과 따로 보관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회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결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딤후 2: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