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1-66
각주
연구 노트
장로들: 마 16:21 연구 노트 참조.
총독 빌라도: 기원 26년에 티베리우스 황제가 유대의 로마 총독(장관)으로 임명한 사람. 그는 약 10년 동안 다스렸다. 성경 필자 외의 다른 저술가들도 빌라도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티베리우스 재위 기간에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처형하도록 명령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카이사레아에 있는 고대 로마 극장에서는 “유대의 장관, 본디오 빌라도”라고 라틴어로 새겨져 있는 글이 발견되었다.—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린 지역을 보려면, 부록 나10 참조.
후회하여: 그리스어 원어 메타멜로마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마 21:29, 32에서 “뉘우치다”라고 번역됨) 유다가 진심으로 회개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을 가리킬 때 성경에서는 메타노에오라는 다른 그리스어를 사용하는데, (마 3:2; 4:17; 눅 15:7; 행 3:19에서 “회개하다”로 번역됨) 이 단어에는 생각이나 태도나 목적이 크게 바뀐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유다가 자기와 함께 모의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고 그 후에 자살한 것을 보면, 그의 생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채 계속 비뚤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고한: 일부 고대 사본에는 “의로운”으로 되어 있다.—마 23:35 비교.
성전: 그리스어 원어 나오스는 성전의 중앙 건물만이 아니라 뜰을 포함한 성전 구역 전체를 가리킬 수 있다.
목매어 죽었다: 누가가 기록한 행 1:18에서는 유다가 떨어져 몸이 파열되었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마태는 유다가 자살한 방법에 초점을 맞춘 반면, 사도행전에서는 그 결과를 묘사한 것 같다.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유다는 절벽 위에서 목을 매달았는데 어느 시점에 줄이 끊어지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아래에 있는 바위로 떨어져 몸이 파열된 것 같다. 예루살렘 주변의 지형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알 수 있다.
헌금함이 있는 곳에서: 또는 “보물고에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막 12:41, 43과 눅 21:1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헌금함”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성전에 있던 여인의 뜰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뜰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다. (부록 나11 참조) 또한 성전에는 이 헌금함들에서 나온 돈을 모아 놓는 큰 보물고도 있었다고 한다. 이 구절에 언급된 것이 그 보물고인 것 같지는 않다.—막 12:41 연구 노트 참조.
핏값: 사람을 죽게 한 대가로 받은 돈을 가리킨다.
성전 보물고: 이 표현은 요 8:20에서 “헌금함이 있는 곳”(“보물고”, 연구 노트 참조)이라고 언급된 성전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이곳은 여인의 뜰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뜰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다. (부록 나11 참조) 또한 성전에는 이 헌금함들에서 나온 돈을 모아 놓는 큰 보물고도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들: 이방인이나 다른 지역에서 방문한 유대인을 가리킨다.
그 돈으로: 수제사장들이 은 30닢으로 땅을 샀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성경 필자는 마태뿐이다. 행 1:18, 19에서는 유다가 그 땅을 샀다고 알려 주는데, 유다에게서 난 돈으로 수제사장들이 그 밭을 샀기 때문인 것 같다.
도공의 밭: 기원 4세기 이래, 이 밭은 힌놈 골짜기가 기드론 골짜기와 만나기 바로 전, 힌놈 골짜기의 남쪽 경사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도공들이 일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마 27:8과 행 1:19에서 알려 주듯이 이 밭은 “피밭” 곧 아겔다마라고 알려지게 되었다.—부록 나12 참조.
오늘날까지도: 이 표현은 사건이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이 내용이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 마태복음은 기원 41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이런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주로 슥 11:12, 13에서 따온 것 같다. 마태는 표현을 다소 바꾸어 그 내용을 언급하면서, 영감을 받아 당시의 상황에 이 예언을 적용시켰다. 마태의 시대에 예레미야서는 예언서들 가운데 가장 앞에 나오는 책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스가랴서를 포함한 예언서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마 1:22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히브리어 원문(마 27:9 연구 노트 참조)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로마 제국 내에서는 카이사르의 승인을 받아야만 왕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할 때 그분이 왕인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표현인 것 같다. (마 26:25, 64 연구 노트 비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임을 인정하기는 하셨지만, 그분의 말씀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로마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요 18:33-37.
죄수 하나를 ··· 놓아주는 관례: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 이 일을 언급한다. (막 15:6-15; 눅 23:16-25; 요 18:39, 40)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런 관례의 근거나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런 전통이 지켜지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도 이 관례를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에 따르면 그들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죄수들을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석: 대개 옥외에 세워 놓은 연단이었다. 관리들은 그곳에 앉아 대중에게 연설하거나 판결을 공포하곤 했다.
꿈: 하느님께서 이 꿈을 꾸게 하신 것 같다. 복음서 필자 중에 마태만이 영감받은 기록에 이 일을 포함시켰다.
손을 씻으며: 어떤 일에 대해 결백하고 책임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인 행동이다. 유대인의 이런 관습은 신 21:6, 7과 시 26:6에서도 언급된다.
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돌리시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겠소”라는 의미이다.
채찍질한: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프라겔로오는 라틴어 플라겔룸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은 로마인들이 채찍질할 때 사용하던 끔찍한 도구의 이름이었다. 이 채찍에는 손잡이가 있었고 여러 가닥의 끈이나 꼬아 만든 가죽끈이 달려 있었다.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그 끈들에 뾰족한 뼛조각이나 금속 조각을 달아 무겁게 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도구로 채찍질을 당하면 심한 타박상을 입고 살점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으며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총독 관저: 그리스어 원어 프라이토리온(라틴어 프라이토리움에서 유래)은 로마 총독의 공식 거처를 가리킨다. 예루살렘에서는 헤롯 대왕이 세운 궁전이 총독 관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 궁전은 예루살렘 남쪽 지역인 상부 도시의 북서쪽 모퉁이에 있었다. (위치를 보려면 부록 나12 참조) 예루살렘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축제 기간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예루살렘에 머물고 그 외에는 주로 카이사레아에 있었다.
진홍색 외투: 왕이나 행정관, 군대 장교들이 입던 긴 옷을 가리킨다. 막 15:17과 요 19:2에서는 이 옷이 자주색이라고 알려 준다. 고대에는 빨강과 파랑이 섞인 색은 어느 색이든 “자주색”이라고 불렀다. 또한 각도나 빛의 반사, 배경 때문에 옷 색깔이 다르게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 복음서 필자들이 이처럼 색을 다르게 묘사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록을 베껴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면류관 ··· 갈대: 군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이 왕이라고 하신 것에 대해 조롱하려고 그분에게 진홍색 외투를 입혔을 뿐 아니라 (마 27:28) 가시관을 왕관처럼 씌우고 갈대를 왕의 홀처럼 손에 쥐게 했다.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는 것은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었지만 이 경우에 군인들은 예수를 조롱하려고 그렇게 했다.—마 17:14 연구 노트 참조.
안녕하시오: 또는 “만세”. 직역하면 “기뻐하시오”. 군인들은 카이사르에게 하듯 예수에게 인사했는데, 자신이 왕이라는 그분의 주장을 비웃으려고 한 것 같다.
키레네: 북아프리카 해안 근처의 도시로, 크레타섬 남남서쪽에 있었다.—부록 나13 참조.
강제로: 마 5:41 연구 노트 참조.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또한 이 단어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 마 10:38; 16:24 연구 노트 참조.
골고타: “해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굴골레트에서 유래했다. (요 19:17 참조. 굴골레트가 “두개골”로 번역된 삿 9:53 비교) 예수 시대에는 이 장소가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부록 나12 참조) 성경은 골고타가 언덕에 있었다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일부 사람들이 예수께서 처형되시는 것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고 알려 준다.—막 15:40; 눅 23:49.
‘해골터’: 막 15:22 연구 노트 참조.
쓸개즙: 쓴 액체라는 의미로 사용된 표현이다. 그리스어 원어 콜레는 식물로 만든 쓴 액체나 일반적인 쓴 물질을 의미한다. 마태는 이 일이 시 69:21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라는 점을 보여 주는데, 「칠십인역」에서는 그 구절에 나오는 “독”이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그리스어 콜레를 사용했다. 아마도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처형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쓴 액체와 포도주를 섞은 음료를 준비했을 것이다. 로마인들도 그러한 음료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은 것 같다. 평행 기록인 막 15:23에 “몰약을 탄 포도주”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 음료에는 몰약과 쓴 액체가 둘 다 들어 있었을 것이다.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모두 온전한 상태에서 믿음의 시험을 치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제비뽑기를 하여: 용어 설명 “제비” 참조.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요 19:23, 24에는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 언급하지 않은 구체적인 점들이 들어 있다. 네 복음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게 된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의 겉옷만이 아니라 속옷을 두고도 제비뽑기를 한 것 같다. 겉옷은 “네 조각을 내어 각자 한 조각씩”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고, 속옷은 찢지 않고 제비를 뽑아 가졌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을 것이라는 시 22:18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처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사람의 옷을 갖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처형을 집행하기 전에 범죄자의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처형당하는 사람이 더욱 심한 굴욕감을 느끼게 했다.
강도: 그리스어 원어 레이스테스는 폭력을 휘둘러 물건을 강탈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으며 때로는 혁명을 꾀하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동일한 단어가 바라바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요 18:40) 눅 23:19에 따르면 그는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다. 동일한 내용을 언급하는 눅 23:32, 33, 39에서는 이 사람들을 “죄수”로 언급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카쿠르고스)는 문자적으로 “나쁜 일이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머리를 흔들면서: 누군가를 비웃거나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행동. 사람들은 대개 이런 행동을 할 때 모욕적인 말도 함께 했다. 형주 곁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시 22:7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마 27:3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마 27:3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엘리, 엘리, 라마 사바크타니?: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이 아람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통용되던,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일 가능성도 있다. 마태와 마가가 그리스어로 음역해서 기록한 이 표현만으로는 원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자신의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외쳐 부르심으로 시 22:1을 성취시키셨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고통스러워하며 외치시는 소리를 듣고 시 22의 나머지 부분에 나오는 그분에 대한 많은 예언을 떠올렸을 수 있다. 그 예언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분을 조롱하고 비웃고 손과 발을 상하게 할 것이었으며 그분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질 것이었다.—시 22:6-8, 16, 18.
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신 포도주: 또는 “포도주 식초”. 묽고 톡 쏘는 신 포도주를 가리키는 것 같다. 라틴어로 아케툼(식초)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것을 물로 희석한 것은 포스카라고 불렀다. 이것은 로마 군인을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흔히 마시던 값싼 음료였다. 신 포도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옥소스는 「칠십인역」의 시 69:21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는 사람들이 메시아에게 “식초”를 줄 것이라고 예언한다.
갈대: 또는 “막대기; 지팡이”. 요한복음에는 “히솝 줄기”라고 되어 있다.—요 19:29. 용어 설명 “히솝” 참조.
하고 말했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이 표현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창을 가지고 와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피와 물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사본들에는 이 말이 들어 있지 않다. 요 19:34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나오지만 요 19:33에 따르면 이 일이 있었을 때는 예수께서 이미 사망하신 상태였다.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과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 그리스어 본문의 편집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권위자들은 필사자들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을 나중에 마태복음에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겹대괄호 안에 넣어서 그리스어 본문에 포함시킨 웨스트콧과 호트도 이 내용이 “서기관들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기술했다. 마태복음 사본들 간에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는 반면, 요한복음과 관련해서는 그런 불확실한 점이 없으므로, 요 19:33, 34에 기록된 대로 로마 군인들이 창으로 예수를 찔렀을 때 그분은 이미 사망하신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번역판에서는 마 27:49에서 이 내용을 생략했다.
자신의 영을 내주셨다: 또는 “숨을 거두셨다”. 이 표현에서 “영”(그리스어 프뉴마)이라는 말은 “호흡”이나 “생명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평행 기록인 막 15:37에서 그리스어 동사 엑프네오(직역하면 “숨을 내쉬다”. 이 구절에서는 “숨을 거두다”로 번역되었다)가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내주셨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므로 살아 있으려는 노력을 스스로 중단하셨음을 시사한다. (요 19:30) 그분은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주어 죽음에 이르”셨다.—사 53:12; 요 10:11.
신성한 곳: 여기서 그리스어 원어 나오스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던 성전의 중앙 건물을 가리킨다.
휘장: 성전에서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걸려 있던 아름답게 장식된 커튼. 유대인의 전통 문헌에 따르면 이 무거운 휘장은 길이가 18미터, 폭이 9미터, 두께가 7.4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이 휘장이 둘로 찢어지게 하심으로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셨을 뿐 아니라 하늘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나타내셨다.—히 10:19, 20. 용어 설명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일으켜져서: “일으키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동사 에게이로는 부활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는’ 것이나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마 12:11; 17:7; 눅 1:69) 마태는 “거룩한 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시체”가 “일으켜졌다”고 말한다. 아마도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무덤이 열려 시체들이 밖으로 나온 것 같다.
그분이 일으켜지신 뒤에: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를 의미한다. 따라서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나중에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또는 “그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나와”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가 남성형 복수 명사에 사용되는 동사인 것을 볼 때, 이 동사의 주체가 52절에서 언급된 시체들(그리스어로는 중성)이 아니라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지나가다가 지진으로 인해 튀어나온 시체들을 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51절) 그들은 도시로 들어가 자신들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마 4:5 연구 노트 참조.
장교: 또는 “백인대장” 즉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로마군 지휘관. 이 장교는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그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유대인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마 27:27; 요 19:7.
막달라 마리아: 다른 마리아와 구별시켜 주는 막달라라는 이름은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 가버나움과 티베리아스 중간쯤에 있던 막달라라는 성읍의 이름에서 나온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막달라가 마리아의 고향이나 거주지였다고 생각한다.—마 15:39; 눅 8:2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 “작은 야고보”라고도 불린다.—막 15:40.
요세: 일부 고대 사본에는 “요세”가 아니라 “요셉”으로 되어 있다. 평행 기록인 막 15:40의 경우 대부분의 고대 사본에 “요세”로 되어 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사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를 가리킨다.—마 4:21; 20:20 연구 노트 참조.
요셉: 복음서 필자들이 요셉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보면 각자의 특성이 드러난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마태는 요셉이 부자라고 알려 준다. 로마인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는 그가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던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라고 말한다. 동정심 많은 의사였던 누가는 그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예수에 대한 의회의 음모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요한만이 그가 “예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막 15:43-46; 눅 23:50-53; 요 19:38-42.
아리마대: 이 도시의 이름은 “높이; 높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눅 23:51에서는 이 도시를 “유대 사람들의 도시”라고 부른다.—부록 나10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 천연 동굴이 아니라 무른 석회암을 파서 만든 방이었다. 그 안에는 대개 벽면을 깎아 파서 시신을 놓을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있었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큰 돌: 둥근 돌이었던 것 같다. 이 구절에서 돌을 굴려 놓았다고 알려 주고, 막 16:4에서 예수의 부활 뒤에 돌이 “굴려져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돌의 무게는 1톤 이상이었을 것이다.
다른 마리아: 마 27:56에 언급된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킨다. 마 28:1; 막 15:40, 47; 16:1; 눅 24:10; 요 19:25에도 이 여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막 3:18; 요 19:25 연구 노트 참조.
이튿날: 니산월 15일을 가리킨다. 니산월 14일 다음 날은 요일에 관계없이 언제나 안식일 즉 거룩한 쉼의 날이었다. 또한 기원 33년에는 니산월 15일이 정규 안식일과 겹쳐 “큰” 안식일 즉 이중 안식일이었다.—요 19:31. 부록 나12 참조.
준비일: 매주 지키는 안식일의 전날을 가리키는 명칭. 이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킬 준비를 했다. 그들은 여분의 음식을 마련했으며 안식일 전에 꼭 해야 하는 급한 일을 끝마쳤다. 여기서 언급된 준비일은 니산월 14일이었다.—막 15:42. 용어 설명 참조.
3일: 이 표현이 반드시 만 3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넷째 날까지가 아니라 “셋째 날까지 그 무덤을 잘 지켜”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마 27:64. 마 12:40 연구 노트 참조.
그러면 이 마지막 속임수가 처음 속임수보다 더 해로울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속임수”는 예수의 부활을 가리키고 “처음 속임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그분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만약 예수가 부활된다면 자신이 메시아라는 그분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미디어
1961년에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카이사레아에 있는 고대 로마식 극장 유적에서 작업하던 중, 한 돌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빌라도의 이름이 라틴어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복제품) 그의 이름은 동시대의 다른 역사 기록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11.5센티미터 길이 쇠못이 박힌 사람의 발꿈치뼈를 복제한 모형이다. 1968년에 예루살렘 북부에서 발굴된 그 유골은 로마 시대 사람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당시 죄수를 처형할 때 그를 나무 기둥에 매달기 위해 못을 사용했다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형주에 매달 때도 이와 비슷한 못을 사용했을 수 있다. 못이 박힌 이 유골은 시신이 부패되고 남은 뼈들을 넣어 두는 석재 유골함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형주에서 처형된 사람도 매장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대개 동굴에 안치하거나 바위를 깎아 만든 방에 안치했다. 그러한 무덤은 왕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도시 밖에 있는 것이 관례였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대인들의 무덤은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유대인의 종교가 죽은 자를 숭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사람이 사후에 영계에서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사상을 조장하는 어떤 내용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